우리에게 선수는 어떤 존재일까
광주 아사니 이적 상황을 두고 선수와 클럽 팬의 관계에 대한 의견들이 보이는데요, 아마 최근 새로 클럽 경기를 보면서 여러 상황에서 각 개인의 입장을 정리해야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특히 "이래서 선수들에게 정을 안 주려고 한다"는 분도 계시고요. 마치 사랑에 상처받은 후 다시 사랑을 안 하련다는 실연당한 사람의 멘트 같기도 합니다 ㅎㅎ
부천FC 팬의 역사도 오래되었으니, 사실 이런 비슷한 고민도 오래 되었는데요, 시대가 변하니까 예전 고민의 결과물을 지금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테지만 참고가 될 것 같아서 올립니다.
"우리 팀에 있을 때는 무조건 내 새끼다"
아마도 98년 목동에서 부천SK 경기 끝난 후 뒤풀이에서 치연한 논쟁 끝에 한 형님이 내린 결론입니다. 부천 서포터는 그 이후 거의 비슷한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상대 팀에서 우리를 괴롭혔든 우리 골대에 골을 넣었든 과거는 필요없다. 이제 우리 유니폼을 입었으니 우리 식구다. 하지만 떠나는 순간 미련없이 놔준다. 그때부터 남이다."
이런 내용이 함축되어 있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결론은 술자리에서 논쟁하다가 내린 것이 아니라, 4~5년 서포터를 만들고 운영한 사람들이 초창기부터 무척이나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일본에서 급부상하던 우리와레즈 서포터가 자신의 구단에 입단하는 한 선수에 대해 (아마도 감정이 별로 안 좋았던 선수였나 봅니다) 서포터 홈페이지 첫 화면에 검정 바탕에 붉은 글씨도 "우라와 레즈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제 우리가 100% 풀 서포트한다"는 내용의 문장을 내걸었는데, 이런 해외 사례도 많이 참고를 했었습니다(이걸 캡쳐 했어야 하는 건데, 20년도 넘어서 지금 찾아보니 없네요. 당시 링크를 돌려보곤했는데).
여기서 파생되는 말은 이제 책을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은데, 몇 가지만 요약하면..
ㅇ 선수 개개인에 어느정도 몰입하지 않으면 클럽 응원 자체도 몰입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승리를 위해 함께 뛰고, 서로 격려하고,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가야 매 경기 몰입이 되고 시너지 효과도 날 것입니다. 이런 취지에서 "우리 팀에 이는 순간은 내 새끼"라고 하는 것입니다. 임대이든 1년 계약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 목표를 위해 함께 갈 때는 우리 편입니다.
ㅇ 클럽을 떠나는 순간 바로 관심을 거두는 것이 장기적인 클럽 지지에 도움이 됩니다. 이제 몇 년 경기장 오는 분들 보시면 아시겠지만, 부천에서 뛰던 선수들이 많은 다른 클럽에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클럽으로 간 선수에게 정을 그대로 둔다면 우리 클럽과 경기에서도 집중이 안됩니다. 나중에는 아주 족보가 꼬여서 클럽 팬이 아니라, 리그 팬이 될 지경이 됩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많은 추억에도 불구하고 놔주는 것이 맞다고 결론을 내렸었습니다.
ㅇ 예외는 있습니다. 수년간 클럽에 머물면서 예를 들어 강등이 되어도 남아서 승격을 시키는 등 클럽을 위해 희생한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는 다른 클럽에 가도 과거 클럽 팬들의 박수를 받기도 하는데, 클럽 지상주의를 보여주는 유럽의 서포터들도 이런 예외를 둘 때가 있습니다(그 선수가 자기 골대에 골을 넣어주면 같이 울기도). 아주 드문 일이고, 이런 선수를 '레전드'라도 하는데, 요즘은 레전드라는 용어가 인플레라서 가치가 희석됐죠.
저는 개인적으로 부천에 입단하는 선수는 마치 영원히 할 것처럼 가슴에 담으려 노력합니다. 그때부터 부상이 걱정되고, 지쳐보이면 걱정되고, 부친을 털어내면 반갑고, 실력이 향상되면 기쁘고, 심지어 상대 선수가 손을 대면 기분 더럽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떠나면 그가 속한 클럽의 팬들에게 넘기는(?) 게 맞고, 선수도 새 팀의 새 팬들에게 사랑을 받는 게 낫겠죠. 그런 의미에서 클럽을 떠난 선수들이 경기 후 인사하러 오는 것을 괴롭습니다.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일전에 최병찬 선수가 이상하게 경력에 입해서 못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의 이력을 찾아서 게시판에 (봤을 지 모르지만) 그가 더 잘 할 수 있고 그럴 자질이 충분하다는 글을 썼는데, 아무튼 이후 엄청난 활약을 했고 얼마나 기뻤는 지 모릅니다. 하지만 1부로 이적했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 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그를 사랑하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학민을 보면 FA컵 전북전 골을 넣고 달려오던 모습이 생각나고, 이정빈을 보면 골을 넣고 유니폼 벗어던지며 달려오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이런 여러 이유로 선수들이 계약이 끝나면 떠나는 존재이고, 돈 더 준다면 떠난다고 해서 관심이나 정까지 거둘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클럽의 구성요소 중에 선수의 위치는 절대적입니다. 있는 동안 영원할 것처럼 사랑하고 관심을 보여죽고, 떠날 때 쿨하게 놔주는 것이 클럽 팬의 운명이자 낭만인 것 같습니다.
페에노트르 같은 팀은 솜털이 보송한 선수를 여기저기서 데리고 와서 한 없이 사랑해 주다가 몸값이 오르면 미련없이 보내고 또 다른 선수를 열렬히 지지합니다. 그가 남긴 이적료와 그가 뛰면서 보탬이 된 클럽의 업척에 감사하면서. 우리도 지금은 한국에서는 딱 그 정도 클럽입니다. 아니 그 이하죠. 안재준 김강산 등 떠오르면 보내야 하고, 선수 인생의 마지막을 불태우는 노장이나, 의외로 잘 안 풀린 젊은 선수들, 신인들이 조화를 이뤄서 뛰다가 또 다시 살아나면 떠나는 그런 구조입니다. 부천을 선택하면 박수치며 맞이하고 또 100% 풀 서포트하고, 떠날 때는 "그동안 즐거웠다. 돈이나 많이 벌어주고 가라"는 게 우리에게 맞는 생존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맞다. 이 말을 쓴다는 게 안 써서 뒤늦게 추가하는데요, 떠나간 선수에 대한 감정이나 대하는 태도 관계 유지 등은 각자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이 마저도 서포터즈 내에서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것은 사적인 영역인 것 같습니다.
(덧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소위 지나친 친목질은 안 했으면 합니다. 팬들은 지금 상대에 대해 부들부들하고 있는데, 손 마주치고 살짝 포옹하는 것 이상의 스킨쉽 등을 하면 기분이 좀 그렇습니다. 그런 건 끝나고 서로 통화를 하든지 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아예 어떤 선수는 상대 벤치가서 친정집 간 딸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도 오직 클럽 응원하고 있던 팬이 볼 때 맥 빠집니다. 요즘은 프런트도 일부 상대 선수들과 지나치게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데 개인적인 것은 개인적인 공간에서 했으면 합니다. 상대 선수가 우리 벤치와서 회포 풀고 가는 것도 영 이상합니다.
댓글
댓글 쓰기인천이랑 할때는 박호민을
엊그제 성남이랑 할때는 이정빈을 아주 더 적극적으로 압박하고 못살게(?)구는 모습보며 희열(?) 같은게 느껴지더라구요
짜증나서 스코어와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납니다만
전 해, 부천에서 뛰다가 김포로 이적한 선수 인사해주겠다고
가변석 맨끝 원정라커 앞까지가서 같이 셀카찍고 고생했다고 소리질러주고 박수쳐주다가 서포터랑 크게 한판 붙는걸 본적이 있습니다.
적당히 덕질하는건 개개인의 취향이니 이해합니다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했으면 하네요
국대 경기때 이강인이나 손흥민이 공만 잡으면 환성이 울려 퍼지는 모습이 전 그렇게 싫더라고요. ㅎㅎㅎ